드라마는 더 이상 대중 오락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를 촉발하는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상작 중심의 드라마는 인간 존재, 윤리, 정의, 자아와 타자의 관계 등 철학의 핵심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어 철학 전공자에게 흥미로운 분석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철학 전공자의 시선에서 분석 가능한 대표 수상작 드라마들을 철학 개념과 연결해 해석해보겠습니다.
실존주의와 존재론: ‘나의 해방일지’와 ‘도깨비’
‘나의 해방일지’는 현대인의 무기력함과 정체성 혼란을 ‘존재의 불안’이라는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염미정은 반복되는 일상과 내면의 공허함 속에서 자아를 찾고자 하며,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정은 고정된 본질 없이 ‘해방’을 욕망하는 존재이며, 해방은 선택과 행동을 통해만 이루어진다는 실존주의의 핵심 논리를 대변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드라마 ‘도깨비’는 불사의 존재 김신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와 죽음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김신은 죽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존재로,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 개념과 일치합니다. 그는 죽음이라는 경계에서 존재의 의미를 회복하려 애쓰며,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실존적 선택의 가치를 체험하게 됩니다. 두 작품은 모두 존재의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철학 전공자에게 실존주의 및 존재론 분석의 좋은 사례가 됩니다.
윤리와 정의: ‘비밀의 숲’과 ‘더 글로리’
윤리적 갈등과 정의 실현의 문제는 고전 철학부터 현대 윤리학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주제입니다. ‘비밀의 숲’은 감정을 잃은 검사 황시목과 정의를 좇는 형사 한여진이 협력해 부패한 법조계를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황시목은 감정 없이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로, 칸트의 의무론(정언명령)에 기반한 도덕적 판단을 보여줍니다. 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캐릭터입니다. 반면, ‘더 글로리’는 철학적으로 훨씬 복합적입니다. 문동은의 복수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지만, 이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수긍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던집니다. 그녀의 행위는 니체의 초인 사상처럼 고통 속에서 자신의 규범을 창조하는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복수로써 사회 정의를 환기시키는 윤리적 실험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윤리학과 정치철학 관점에서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며, 드라마가 도덕적 판단의 시뮬레이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타자성과 사회철학: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나의 아저씨’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정의하고 사회적 의미를 찾는 철학은 현대 사회철학의 중요한 축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다름’의 철학을 전개합니다. 우영우는 법적 지식에 있어서는 천재이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는 타인과의 거리감을 느낍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성(the Other) 개념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 자리를 잡습니다. ‘나의 아저씨’ 역시 타자성을 섬세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지안과 박동훈의 관계는 권력이나 의무가 아닌, 정서적 공명과 윤리적 배려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보부아르가 말한 ‘상호주체성’ 개념과도 연결되며, 타자를 수용함으로써 인간은 더 큰 윤리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타자를 마주하며 자아를 확인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묻습니다. 철학 전공자에게는 관계윤리와 사회철학의 실질적인 사례로 분석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소재입니다.
철학 전공자에게 드라마는 추상 개념을 현실적으로 풀어낸 ‘철학적 사례 연구’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수상작 중심의 작품들은 실존, 윤리, 정의, 타자성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서사에 녹여내며 깊은 사유를 이끌어냅니다. 앞으로 드라마를 단순한 감상에서 나아가, 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해보며 새로운 인문학적 통찰을 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